전문가칼럼

어두운 사회를 밝히는 평생학습을 이끄는 우리들

삼일야간학교장 김대희

더는 배울 사람이 없어 학교 문을 닫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김대희 교장김대희 교장

삼일야간학교는 1972년 5월 20일에 개교한 야학으로, 두류네거리 인근 신흥초등학교 지하교실 2칸을 무상 임대하여 삼일재건학교라는 교명으로 시작하였다. 그 후 대구광역시 교육청의 설립인가를 받아 2년제 실업교육 위주로 정규학 외에 상업, 공업 수업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나는 설립 초기 자원봉사 교사로 참여하여 수학과 과학을 가르쳤지만 동료교사들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수업이 힘들 경우 내가 제일 못하는 과목인 음악과 미술 수업을 담당하기도 했었다. 그 후 서무과장, 학생과장, 교무과장, 교감을 거처 교장으로 지금까지 48년 간 학교를 지키고 있다.

현재는 재학생 39명, 대학생 자원봉사자 선생님으로 구성된 교사 20명과 함께 한글, 초등, 중등, 고등과정의 4개 반을 운영되고 있는 대구의 대표 야학, 성인문해교육 전담기관의 중심축이라 자부한다. 학생들 평균연령 65세, 최고령학습자 76세 만학도들의 눈과 같이, 어두운 이 사회를 평생학습의 이념으로 바닷길을 안내하는 등대와 같이 밝고 선명하게 비추고 있다.

개교 초 입학생 모집 당시에는 참여자가 많아 2학급 120명 모집에 500명 이상의 학생이 지원하여 입학시험을 치러 신입생을 선발하였었고 정규학교와 같이 교복을 입고, 소풍과 수학여행도 다녀오고, 교내백일장과 신체검사도 실시하는 등 정규학교처럼 야간에 운영하는 실업학교 형태로 운영되었었다. 학생들의 주 구성원은 인근 지역의 학령기를 놓친 청소년들로, 보통 15~20세 정도의 나이였으며 심지어 학생과 교사가 초등학교 친구인 경우도 있었다.

당시는 학교재정이 열악하여 다른 초등학교의 어두운 등사실을 야간에 몰래 침입하여 시험문제나 과제를 프린트하다가 얼굴과 손이 등사잉크로 까맣게 된 경우도 있었고, 분필과 흑판 지우개를 대학교 강의실에서 몰래 가져와서 수업을 하기도 했으며, 학생들의 필기도구는 선생님들이 사비를 털어 나누어 주는 등 웃픈(웃기면서 슬픈) 에피소드도 많이 있었다.

1988년에는, 사용 중이던 초등학교의 교실 사용이 불허됨으로써 중구 삼덕교회 5층 교육관으로 이전하기도 했었고, 1990년 8월에는 송현동 지하 25평을 임대하여 선생님들이 직접 교실을 꾸며 고등부와 정규교육 이외에 특별활동시간을 신설했으며 1992년부터는 주5일 수업 및 예비반을 운영하게 되었다.

1993년에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오는 대학생 자원봉사 선생님과 직장에서 바로 학교로 오는 학생들을 위하여 당직을 정하여 저녁 야식(쌀과 필수재료만 내가 제공했고 기타 부식은 선생님들이 직접 준비)을 제공하기도 했다.

또, 열악한 학교환경으로 인해 학교운영을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하여 휴일이나 방학 중에 남자 선생님들이 일용직 근로자로 취업하여 일당을 학교 재정운영을 위하여 기부하기도 했었다.

2005년 즈음 성인한글반을 신설하여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성인들을 위하여 초등반을 운영하게 되어 만학도 중심의 문해교육과 평생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2009년에 이르러 현재의 서남시장 상가로 학교를 이전하고 교무실 겸 상담실 1칸, 교실 4칸을 만들게 되었다. 또한, 식사 준비를 위한 주방시설과 함께 한글 교육을 위한 문해반,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위한 문해2반, 중졸 감점 고시를 위한 중등반, 고졸 검정고시를 위한 고등반을 운영하게 되었다. 만학도 고졸 검정고시 합격자에게는 대학진학을 권유하고 대학진학에 대한 학과상담 및 입학방법, 전형내용 안내 등 진학 지도를 하고, 진학한 졸업생들에게는 리포트 제출 및 강의 진행 내용, 방송통신대학의 인터넷 수업에 관한 내용들을 지도하여 대학진학 후의 상담도 진행하게 되었다.

삼일야간학교

특히, 올해 검정고시(4월 11일 예정, 5월 23일 연기시행)는 코로나19로 인해 대면수업이 불가해지면서 정규, 비정규학교를 통틀어 전국에서 처음으로 만학도들을 위한 온라인 수업을 실시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이나 교장인 나 자신도 반신반의하여 ‘잘될 수 있을까’의심했지만 예상 밖으로 만학도들이 잘 따라와 주어 14명 전원 합격하는 의외의 성과를 보았다. 하반기 검정고시는 6월 2일 개강하여 8월 22일 시험을 보는 촉박한 일정에서도 16명 전원이 합격하는 성과를 냈으며, 8월 진행된 중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최고령자로 합격하는 이변을 만들어 내기도했다.

지금도 대학교 진학을 희망하는 12명의 졸업생들이 학과 선택과 진학할 학교선택으로 선생님들과 부지런히 상담을 하고 있다.

매년 우리 학교에서는 시민들에게 야학을 알리는 ‘삼일야학 일일 카페’(선생님들이 전날부터 재료를 준비하면서 졸업생들과 전직 교사들과 함께 교류하는 일일 카페)를 운영하여 판매수익금과 찬조금을 학교운영기금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보다 많은 시민들이 이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란다.

사실 나는, 50여 년의 세월을 한자리에 지키고 있다보니 전문가라고 견해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끄럽게도 전문가라고 지칭하는 사실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지난 세월들을 지내오면서 그간 겪었던 우여곡절들을 이런 자리를 통해 이야기 해주는 것이 나의 견해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짧게나마 이야기해보았다.

부족함도 많았고, 함께 견뎌온 선생님들, 학습자들과 만들어낸 수많은 성과와 아쉬움들과 반성이 현재 이 자리의 나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 같다.

아직도 사각지대에 놓인 많은 학습자들이 많다. 나는 이들을 찾아내고 용기를 주기위해 오늘도 나는, 그리고 우리는, 세심한 관심을 가지고 격려해주어야 할 것이다.

어두운 형광등 불빛 아래 오늘도 꿈과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대학교, 석사, 박사까지 하고 싶은 노년의 아름다운 인생 만학도를 위하여, 삼일야간학교의 등불은 오늘도 어두운 밤을 따뜻하고 찬란하게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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